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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잦은 부부관계로 폐경이 늦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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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관계와 폐경, 정말 연관이 있을까?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나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부부관계를 자주 하면 폐경이 늦춰진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저도 이 말을 듣고 솔깃하면서도 '과연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직접 여러 기사와 논문 자료를 찾아보며 이 흥미로운 주제를 파헤쳐 보기로 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 한 편의 연구 논문

이 주장의 근원을 추적해보니, 영국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팀이 발표한 한 논문에서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수천 명의 중년 여성을 10년간 추적 관찰한 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꽤 놀라웠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성생활을 하는 여성은 한 달에 한 번 미만인 여성보다 특정 나이에 폐경을 맞을 확률이 28%나 낮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성생활을 하는 경우에도 그 확률이 19% 낮아졌죠. 여기서 말하는 '성생활'은 삽입 성교뿐만 아니라 구강성교, 애무, 자위 등 포괄적인 성적 활동을 모두 포함한 개념이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사용-상실' 가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사용하지 않으면 잃는다(Use It or Lose It)'는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우리 몸이 굉장히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하는데요.

여성이 성적으로 활발하지 않으면, 우리 몸은 '임신할 가능성이 없구나'라고 판단합니다. 배란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과정인데, 임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굳이 에너지를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죠. 그래서 배란을 멈추고(즉, 폐경을 시작하고)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도록 재분배한다는 설명입니다. 꽤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나요?

하지만, 가장 강력한 반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지만 여기서 아주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바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죠. 성관계가 폐경을 늦추는 게 아니라, 폐경이 시작되면서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가 성관계 횟수를 줄이는 것은 아닐까요?

이것이 바로 '인과관계의 역전' 가설이며, 사실 이쪽의 의학적 근거가 훨씬 더 탄탄합니다. 폐경 이행기가 되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수치가 떨어지면서 질 건조증이 생기기 쉽고, 이는 성교통의 원인이 됩니다.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피하게 될 수 있죠. 또한, 안면 홍조, 피로감, 수면 장애, 감정 기복 같은 여러 갱년기 증상들 역시 성적 욕구를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즉, UCL 연구에서 '성관계 빈도가 낮은 여성들이 더 일찍 폐경을 맞이했다'는 결과는, 어쩌면 그 여성들이 이미 갱년기 증상을 겪고 있어 성생활이 줄어든 상태를 포착한 것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합니다.

더 큰 그림: 폐경 시기를 결정하는 진짜 요인들

설령 성관계 빈도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하더라도, 그것이 폐경 시점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결코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더 명확하게 입증된 요인들은 따로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요인은 바로 유전입니다. 보통 어머니나 자매의 폐경 연령을 따라가는 경향이 매우 큽니다. 또한, 흡연은 폐경을 평균 1~2년 앞당기는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생활 습관 요인으로 꼽힙니다. 그 외에도 영양 상태, 출산 경험, 전반적인 건강 상태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폐경 시기가 결정됩니다.

최종 결론: 그래서, 신빙성이 있는 말일까?

모든 정보를 종합해 본 결과, "부부관계를 자주 하면 폐경이 늦춰진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기보다는 '흥미로운 가설'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정확해 보입니다.

통계적인 '연관성'은 발견되었지만, 그것이 '인과관계'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폐경 과정이 성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 반대 가설이 현재로서는 더 설득력이 높습니다.

따라서 폐경을 늦추기 위한 '전략'으로 성생활 빈도를 늘리는 것을 권장할 과학적 근거는 아직 부족합니다. 다만